이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김정은 수령님 만세를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름
김홍일
6.25 발발하고 서울 사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한강이남에 방어선을 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늙은이가 자꾸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자고 우긴다, 매번 지기만 한 장개석 군 장군이 무슨 장군이냐"
라고 비아냥 대신 우리 채병덕 총장니므(...)
물론 역사가 알다싶이 북한군에게 국군은 박살이 나버리고 조각조각난 군대에 멘붕한 채병덕 총장니므...는
김홍일 장군에게 방어를 짬때려버림.
하지만 방어선에 전권을 받은 김홍일 장군은 멘붕이나 남탓을 하는 대신 행동에 나서는데
시흥 지구 전투 사령부 사령관이지만 말이 사령관이지 휘하 병력은 커녕 참모도 없던 "1인 사령부" 상태
당시 국군은 혼성 수도, 1, 2, 3, 7사단, 독립기간연대가 패배로 사기 0으로 패닉런중이였고
1사단장이던 백선엽 장군도 자기 사단의 수습을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각기 도주하여 살아서 만나자고 했던 상태
(다만 1사단은 후퇴후 집결에 성공하여 김홍일의 재편으로 "혼성"이 된 다른 사단과 달리 11,12,13연대의 건제를 유지합니다)
근데 김홍일 장군은 이걸 3개 사단으로 재편하여 부대를 다시 장악하는 기적을 이뤄내고
그 3개 사단으로 방어, 지연전을 펼쳐서
6.28 ~ 7.4까지 1주일간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후방에서 정부 재건 및 조각난 국군을 정비해서 방어선을 짤수 있는 일주일을 벌어내는 기적을 달성함.
이때 벌었던 7일의 시간이 있었기에
UN군이 참전 의결 및 낙동간 방어선 구축이 가능했음.
UN군 참전이후 북진과 승리,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전세 역전
그리고 6.25 개전 초기 당시에 채병덕을 비롯한 삽질때문에 개전 초기가 흑역사 취급으로 잘 조명되지 않지만
김홍일 장군이 이때 1주일의 기적을 만들지 못했더라면
우리 모두는 지금 아오지 탄광이나 수용소에 가있지 않았을까가 정배라고 봄.
독립운동가+한국전쟁 영웅+민주화 시위 군경진압 반대하다 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