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플레이트 아머는 얼마나 무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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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플레이트 아머는 얼마나 무거운가? 







전근대 방호력의 정점으로 불리는 풀 플레이트 아머, 어느정도 무게였을까?





인터넷의 경우 보통 20 kg 내외, 혹은 20-30 kg 정도로 이야기 하고 무게 분산이 잘 되어있어서 체감상 가볍다는데 실제로도 그러했는가?








 




판갑, 플레이트 아머의 등장 자체는 부위마다 다르지만 대략 1300-1350년대,


코트 오브 플레이트를 지나 전신 풀 플레이트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1400-1410년대,


풀 플레이트 아머의 전성기는 1450-1550년대,


1550-1650년대는 점차 플레이트 아머의 방호면적이 줄어들고 방탄 등의 기능에 치중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당시 북이탈리아 지역의 용병대장, 콘도티에로(condottiero)들이 이러한 풀 플레이트 아머 사용의 핵심이었는데 북이탈리아 플레이트 아머 풀 세트 유물들을 보면 평균 30.54 kg 정도의 무게를 지녔다.



이는 플레이트 아머 내부에 입는 겨드랑이, 사타구니같은 약점 보호를 위한 사슬이 달린 아밍 더블릿 등을 제외한 수치로 이를 포함하면 대략 35.72 kg 정도의 중량이다.


이는 도검 등의 각종 무장이나 방패 등 추가적인 방어구 등을 제외한 수치다.



이후 추가적으로 분석된 유물의 경우 최대 58 kg 이상의 무게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고 보다 낮은 중량을 가지는 경우도 생기긴 했다.













Askew, G. N., F. Formenti, and A. E. Minetti, Limitations imposed by wearing armour on medieval soldier’s locomotor performance (2012)



해당 논문에서 갑옷 착용으로 인해 인체에 가해지는 부하를 실험할 때 사용한 갑옷도 영국식(1470~1480), 밀라노식(15세기 중후반), 게르만 고딕 양식(15세기 후반) 등 다양한 양식의 풀 플레이트 아머로 갑옷의 중량은 아밍 더블릿 포함 평균 35 ± 5kg였으며, 이는 피험자 체중의 44 ± 3%에 해당했다.


피험자(4명)의 체격과 연령은 175 ± 4cm, 79 ± 10kg, 36 ± 4세이다.














Range of motion and energy cost of locomotion of the late medieval armoured fighter: A proof of concept of confronting the medieval technical literature with modern movement analysis (2016)




해당 논문에서도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가 1449년경에 주문 제작한 갑옷 유물을 기반으로 측정하였으며 아밍 더블릿, 사슬 거셋까지 더해 39.8 kg의 중량이었고 착용자는 186 cm, 84 kg의 체격으로 체중 대비 46% 정도의 질량을 가졌다.


다만 체격이 평균 이상으로 상당히 크기도 하고 논문의 경우 도보전투 시 박투나 시합 중심의 갑옷 평가하여 기마전용이나 실전에서는 더 가벼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이러한 중량의 무장은 고위 지휘관, 당시 용병, 상비군 등 전문 직업 군인끼리의 편제 내에서도 10명 내외 부대의 지휘관과 중기병 역할을 겸하는 맨앳암즈나 지휘관인 콘도티에로 정도만이 장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기동성을 바라고 이보다 경량의 무장을 생각한다면 '냉병기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기사와 중장병의 이미지도 보편적으로 자리잡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정말 이들이 이러한 갑옷을 입고 무리 없이 전투했는가?











갑옷으로 인한 하중과 부하에 대한 논문은 다양하지만 핵심적으로 언급되는 건 가동범위는 생각보다 유연하여 동작 수행에서 비착용 상태에 근접한 경우가 많지만 사지에 걸리는 '분산된' 하중 때문에 이동 시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이다.






중무장 기조는 전장의 범위가 좁고 행군 거리가 짧은 북이탈리아 도시 지역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그럼에도 이들은 기마 행군을 중심으로 수행했다.


전장의 범위와 행군 거리가 커질수록 이들의 규모는 작아지고 경기병이나 경장 보병에게 보다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전장의 범위가 크다고 전부 플레이트 아머를 입지 않은 건 아니며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도 중기병, 맨앳암즈는 활약하긴 했다.


포르투갈의 왕, 세바스티앙 1세도 1578년 크사르 엘케비르 전투 당시 북아프리카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전신 갑옷을 입은 몸에 물을 부워가며 행군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여러모로 다양한 전술/전략적 실수를 저질러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대 기준으로도 상당한 중량 부담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다.








현대 미군 교범에서 


전투를 위한 하중은 체중의 30%, 

행군을 위한 하중은 체중의 45%, 

위급 상황 시 하중은 체중의 70%


로 규정하고 있다.





1738년 권투 규칙에 의하면 160 lb를 평균으로 정하고 160 lb 이상은 헤비급, 160 lb 미만은 라이트급으로 규정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160 lb는 약 72.6 kg으로 전투 하중은 21.8 kg, 행군 하중은 32.7 kg, 위급 시 하중 최대치는 50.8 kg이다.







1867년 영국군에서 연구한 평균 남성에게 전투 시 부담을 주지 않는 하중의 한계치는 45 lb = 20.4 kg으로 현대 미군의 전투 하중에 근접한 수치를 보인다.



30 kg 이상의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진군한다면 아무리 승마하고 이동한다 해도 부담이 안될 수가 없다.








Chapter 104: What properties defensive arms should have in order to be good

I should write something about defensive arms, which logically require three principal properties: they should be light, protective, and flexible. But rarely do we see these properties in arms that knights commonly use, especially in the white armor worn by heavily armed knights: even if they are light, they hinder owing to their construction, nor are they protective, since they leave many openings. I have personally witnessed two combatants in full white armor getting hurt almost as quickly as if they had been in their shirts. Those who are capable should be armed otherwise, particularly in single combat. In this kind of fighting, I consider it more inconvenient to be burdened with too much armor than to have some parts of the body exposed, the rear parts at least, or to have them lightly armored. Anyone who knows how to conduct himself as I have already prescribed can easily be protected against taking from behind or from the side, so that he can be lightly armed overall, and strongly where there is need of it. Indeed someone in a mail shirt can fight adequately with a [fully armored]148 knight, although it would be necessary to keep one’s distance with great caution until the heavily armed opponent falters or is disordered.



제104장: 훌륭한 방어용 무구가 갖추어야 할 조건


방어용 무구(defensive arms)에 대해 몇 자 적어보자면, 여기에는 논리적으로 세 가지 주요한 특성이 요구된다. 즉, 가벼워야 하고, 방호력이 좋아야 하며,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무구, 특히 중무장한 기사들이 착용하는 백색 갑옷(white armor)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찾아보기가 드물다. 설령 무게가 가볍다 하더라도 그 구조 탓에 움직임이 저해되며, 틈새가 많아 방호력 또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백색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두 전투원이, 마치 셔츠 차림이었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순식간에 부상을 입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능숙한 자라면, 특히 결투(single combat)에 있어서는 다른 방식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전투에서는 과도한 갑옷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 신체 일부, 적어도 후면부를 노출하거나 가볍게 무장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서 설명한 대로 처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후방이나 측면에서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을 것이므로, 전체적으로는 가볍게 무장하되 필요한 부위만 견고하게 갖추면 된다.


실제로 사슬 갑옷(mail shirt) 하나만 걸친 사람이라도 완전 무장한 기사를 상대로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단, 중무장한 상대가 지치거나 태세가 무너질 때까지 극도로 주의하며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용병대장이었던 피에르토 몬테(1457–1509)도 전투 시에 하중의 부담에 대해 약간씩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뿐만 아니라 하중이 분산되어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진다는데 가만히 있는 부동 상태에서는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사슬 갑옷이나 끈으로 이루어진 갑옷은 가죽 끈이나 실로 몸에 묶는 방식을 통해 가슴, 허리, 골반 등에 하중을 분산시키지만 플레이트의 단단함은 구조 자체는 분리가 됐더라도 이러한 하중의 이동이 일체형에 가까워서 오히려 거동 시 불편한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도 시기적으로 무로마치 시대 초기와 특히 기마행군 및 전투가 많은 동북 지역에서는 보다 무겁고 튼튼한 구조를 꾸준히 유지했지만 이후 전국시대, 특히 서부 지역에서는 무사들 조차 도보행군 및 전투, 산악전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보다 하체 방어를 끈으로 연결하여 보다 가볍고 골반에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가 유행했다.















다만 이러한 약점에도 착용자 본인의 생존성을 보장해준다는 점과 그 방어력에서 오는 돌파력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갑옷의 정점으로 평가 받고 전장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중요한 것은 절대 무적의 무기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둔중함은 생각보다 큰 약점이었고 이는 총기시대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도 중장병의 돌격력과 접전 역량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경기병을 운용해 상황을 조성시켰으며 뿐만 아니라 영국 등 궁수나 보병으로 이들과 연계하여 성과를 내었다.
















1336년 라우펜 전투, 1386년 젬파흐 전투, 1422년 아르베도 전투에서도 중장병들이 하마해서 난전을 벌였으나 스위스 경보병의 할버드에 처참하게 패배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몰렸으며 아르베도 전투에서는 할버드보다 긴 랜스로 스위스 보병을 밀어내고 나서야 위협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476년 모랏 전투에서 부르고뉴의 중장병은 스위스 보병의 장창과 할버드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으며 1477년 낭시 전투에서 용담공 샤를 본인도 전사했다.


1485년 리처드 3세도 중무장한 상태로 싸웠으나 폴액스 혹은 빌(Bill)에 뒤통수가 잘려 죽었다.




백년전쟁 당시에도 수많은 기사와 중장병들이 장궁, 쇠뇌, 장병기 등에 피해를 입거나 죽었다.








이처럼 화기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시절에도 풀 플레이트 아머 입는다고 죽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족으로 내용이 매우 길어졌는데 요약하자면




1. 플레이트 아머 전성기였던 15세기 당시 풀 플레이트 아머의 중량은 35 kg 내외

2. 동작 수행 자체는 무게 분산으로 편하지만 장기간 전투는 사지에 걸리는 하중으로 예상보다 더욱 힘듬

3. 매우 효과적이고 우수한 갑옷은 맞지만 화기 도입 이전에도 무적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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