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가 아랍 최후의 사회주의 정권으로 남은 몇가지 이유
1. 이미 내전을 빠르게 겪음
1991년 사실상 최초로 실시된 자유 선거에서 이슬람 정당이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지만 군부가 이를 불복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를 무효화시킴. 이후 벌어진 시위를 무력 진압하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확전되어 2002년까지 10년동안 알제리 내전이 발발하게 됨.
10년간의 내전동안 최대 15만명이 사망하고 각종 무장집단들의 민간인 학살. 관광객.외국인 피랍.살인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알제리는 북아프리카에서 유일한 지옥 국가를 넘어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카오스 국가로 악명을 떨치게 됨
극단 이슬람 무장집단들은 민간인 상대로도 각종 공격.암살.테러를 자행하면서 민심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결국 2002년 사회주의 군부가 내전에서 최종 승리하게 되는데 여기서 협상에 응하지 않은 지하디스트들은 알카에다 같은 국제테러조직 산하로 흡수되고 알제리에서는 더이상 발뻗을 틈이 없어지자 아프리카 남쪽으로 남하를 강행하게 되는데 이놈들이 2010년대 중반이후 말리.니제르.부르키나파소 등을 침투하며 사헬 전쟁을 일으키며 이쪽 지역을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임.
분명 내전의 첫 책임은 정당한 선거 결과를 불복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를 뒤엎은 군부에게 있었으니 처음 대중 민심은 군부보다 이슬람세력 편으로 기울어 있었으나 군부의 압도적인 무력앞에 상대가 되지 않던 이슬람 무장집단들은 점점 더 민간인 상대로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격 대상을 확대하는 극단적인 전술로 나아가게 되고 각종 테러.암살을 자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심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처음 이슬람을 지지하던 다수의 군중들까지 나중에는 소극적 군부 지지자. 현상유지파로 전향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됨.
당연히 내전의 고초 속에서 알제리 머중 대다수는 그래도 지옥같던 내전시절보다는 현상 유지가 낫다는 애증 속에서 군부+사회주의 여당을 용인하는 감정이 지배하게 돼버림
그래도 다른 중동국가들보다는 한걸음 앞서 이미 진통을 겪었던지라 오히려 200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급진화된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의 공격으로부턴 알제리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아이러니한 결과를 맞이하게 됨
2. 집권 세력의 명분
전세계를 막론하고 전쟁 영웅. 독립 영웅은 정치 권력에서 자연스럽게 엄청난 국민적 인기와 더불어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권력획득의 정당성.명분을 얻게 되는데
알제리에서는 국민해방전선(FLN)이 그러한 조직임
알제리에서는 FLN이 사실상 알제리 전쟁 자체를 전두지휘하며 프랑스랑 다이다이를 깠고 숱한 피를 흘리며 결국 독립을 쟁취하게 됨.
세계 전쟁사에서도 알제리 전쟁은 베트남 전쟁 등과 더불어 피지배국이 지배국이랑 직접 전쟁을 치러 독립을 쟁취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으니 이 전쟁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자긍심이나 국뽕은 어느정도인지 말안해도 파악이 될거임.
이 알제리 전쟁을 지휘한 조직으로서 FLN의 위상.권력.영향력은 당연히 무소불위의 수준이었고 1당제 기간을 넘어 현재까지도 독립 이래 줄곧 여당의 지위를 독식하고 있음
3. 여당의 군부 장악
2번과 연결되는 내용이지만 알제리의 독립 전쟁을 주도한게 FLN이었고 당연히 이 세력이 신생국가인 알제리군을 장악하게 됨. 이때 전쟁에 참여한 장교들은 줄곧 알제리의 최상층 권력 정점에 서서 알제리를 이끌었고 이중 일부 강경파 세력이 1991년 선거 결과를 뒤집어 엎은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까지 촉발하게 된거임.
독립으로부터 6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군부는 FLN과 그 후대 세력이 장악하고 군부 핵심층도 이들의 입맛에 맞게 채워지고 있음
4. 상대적으로는 순한맛의 독재 수준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분류 기준으로 알제리는 정치적 권리 6등급 시민의 자유 5등급으로 비자유국으로 분류되지만 이 6-5등급은 중동에서는 그나마 정상적인 국가로 거론되고 있는 요르단과 같은 등급으로 사실상 이스라엘.레바논.튀니지 정도를 제외하면 중동-북아프리카 전체에서 알제리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는 국가가 없다고 봐도 될 지경임.
특히 비슷한 아랍사회주의 국가였던 카다피 치하 리비아나 아사드 치하 시리아. 또 비슷하게 군부가 집권중인 국가인 엘-시시 치하의 이집트와 비교하면 알제리의 독재 수준은 순한맛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음
5. 시기.상황마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변화.수용하는 대응.기만책
80년대까지의 FLN 1당 독재시절 FLN은 다른 아랍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세력을 탄압했지만 시리아.리비아.이집트에 비해 탄압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했고 FLN도 이슬람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FLN은 이슬람에 친화적이고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융합시키는 세력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만들어왔음.
80년대 중반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완화하고 자유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으며
1988년 대규모 봉기가 발생하자 다당제를 도입하고 자유 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하는 동시에 이슬람세력의 참여도 용인했음. 이슬람세력의 선거 참여를 허용하는건 그당시 시리아.리비아.이집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음.
대부분의 국가가 1당독재를 행하던 아프리카에서 알제리의 다당제 도입은 그나마 빠른 편이었고 이슬람 세력의 자유선거 참여 허용으로 불만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음.
물론 이 모든 약속은 이슬람세력이 실제 선거에서 압승하자 FLN-군부가 바로 뒤엎어버리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전부 없던일이 돼버림.
그러나 10년간의 내전 기간동안 이슬람세력은 지들의 병신짓으로 인해 있던 민심조차 다 박살나게 되고 결국 2002년 FLN이 최종 승리하게 되는데
알제리 독립전쟁. 알제리 내전 2번의 전쟁을 전부 승리한 FLN은 이제 국내에서도 적수조차 전혀 없어지게 돼버리고 이슬람 세력은 민심을 잃어버리면서 FLN에 부정적이던 사람들까지 FLN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거임
이런 FLN에게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온건 2011년이었음.
중동-북아프리카 전체를 아랍의 봄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었으며 알제리의 옆동네인 튀니지나 이집트는 이미 1빠따. 2빠따로 정권이 갈려버리고 리비아 조차도 카다피 박살내겠다고 내전으로 치달은 상황이었음.
당시 알제리의 대통령은 1999년부터 집권중이었던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로 알제리 독립전쟁에도 참여했던 이력이 있는 인물임.
그 당시 알제리의 민주주의.자유 수준은 무바라크 시기 이집트랑 흡사했는데 무바라크 정권이 박살나고 경제난.부패로 시달리던 알제리가 그 후속 후보라고 외신에서도 연일 보도를 때렸음.
당연히 알제리에도 시위 열풍은 수입되게 되는데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FLN은 1992년 내전 이후 19년동안 이어지던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고 몇가지 민주 개혁 요소들을 던지면서 시위대에게 협상안을 제시함.
이 카드가 먹힌건지 외신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제리의 시위는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다른 중동국가들과는 다르게 아랍의 봄은 알제리에선 조용하고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버렸음
여당의 당근외에도 당시 알제리가 아랍의 봄 행렬에 무덤덤했던건 이미 10년간 내전에 시달리면서 변화나 혁명보다는 현상 유지. 안전에 더욱 강하게 집착하게 된 알제리 대중들의 민심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많음
실제로 바로 다음해인 2012년 총선은 알제리에서 열린 시위치고는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졌으나 FLN은 오히려 의석을 더욱 늘리면서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됨.
하지만 FLN-군부의 최대 위기는 8년 뒤에 다시 찾아오게 되는데
아직도 권력욕을 못잃던 부테플리카는 5선에 다시 도전한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고 경제난.부패에 시달리던 알제리 대중들에게 이 발언은 트리거를 일으키게 됨
2019년 시위는 2011년 시위보다 훨씬 거대하고 격렬했으며 2011년 시위때는 협상책으로 상황을 빠르게 넘긴 군부와 FLN도 이번에는 그정도로는 불가능하다는걸 느낀건지
알제리 육군참모총장이자 오랫동안 부테플리카의 오른팔이었던 사이드 갈라흐는 부테플리카에게 사임을 강요하면서 부테플리카 손절과 동시에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키게 됨.
결국 부테플리카는 하야하게 되고 군부-FLN은 2011년보다도 훨씬 거대한 정치개혁과 의회와 사법부 권력 강화 등 개헌안을 내놓는 지경에 이르게 됨.
이렇게 최대 위기를 맞게 된 FLN은 이번에는 아예 부테플리카를 손절쳐버리고 개헌까지 발표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됨.
부테플리카를 직접 제거한 장본인인 갈라흐도 이때 정신적 충격이 컸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됨
이렇게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에는 별 재미를 못봤던 알제리가 정작 8년후에 절반의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때의 혁명을 히라크라고 부름
개헌 선거는 2020년에 68%의 득표율로 통과되었고 2021년 총선이 열리게 되는데
의석이 존나게 까였지만 FLN은 가까스로 겨우 1당 유지에 성공함.
어쨋건 FLN은 손과 발을 잘라내면서까지 집권 유지 자체에는 성공한 셈임.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FLN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협상과 기만. 말바꾸기 등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해왔다는 걸 알 수 있고 개혁이라는 것도 진정한 의지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권력 유지의 수단이자 단순히 협상책으로만 이용해온게 눈에 보일거임